강간 당하며 죽었다.
아직도 범인을 못잡았나?
뭘 하고 있는거지, 윌러비 서장?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이자, 이 세 문장으로 설명 할 수 영화.
예측 불허하지만 정교하게 짜여진 각본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돋보였던<쓰리 빌보드> 입니다.

각본/ 감독 마틴 맥도나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우디 해럴슨, 샘 록웰
장르 범죄드라마, 블랙코미디
2017년 베니스 영화제 각본상 수상
2017년 제75회 골든 글로브 드라마 부문 작품상, 각본상 수상작이자 최다수상작.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수상
오프닝 시퀀스- 군더더기 없는 이정표와 비틀기
이 영화 역시 오프닝 시퀀스부터 살펴봅시다.
잔디밭이 푸르게 펼쳐진 벌판에 나열된 낡은 광고판. 주인공 밀드레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낡은 광고판을 유심히 살피다 광고를 싣기로 합니다.
‘강간 당하며 죽었다.’ / ‘아직도 범인을 못잡았나?’ / ‘뭘 하고 있는 거지, 윌라비 서장?’
별 일없이 순찰을 돌던 경찰관 딕슨은 그 내용을 보고 눈이 뒤집혀지죠. 광고판을 칠하고 있던 흑인남자에게 사소한 트집으로 방해를 하려고도 하죠. 하지만 흑인남자는 오히려 딕슨이 부당한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임을 인식시켜 줍니다. 방해가 먹히지 않자, 딕슨은 광고판이 저격하고 있는 윌러비 서장에게 전화를 해 상황을 보고하고, 서장은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두 딸과 함께 부활절 저녁식사를 만끽하던 중 전화를 받게 됩니다. 군더더기 없는 몇개의 씬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캐릭터, 인물구도를 예측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밀드레드의 사연은 광고판 세 개로 설명된 것이나 마찬가지.
딕슨이 어떤 경찰인가는 광고판을 만들던 흑인남자와의 대화, 윌러비 서장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윌라비 서장은 가족들과의 식사 장면으로 가정적이고 따뜻한 사람으로 설명됩니다.
이로써 관객들은 도발적인 문구의 광고판을 사이에 두고 밀드레드와 윌러비의 갈등구조로 이어질 것을 예측하게 되죠. 하지만 밀드레드가 세운 도발적인 문구의 광고판은 윌러비 서장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어 이 영화가 두 사람의 갈등 구조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게 되죠. 하지만 영화의 중반에 접어들 무렵 윌러비 서장의 갑작스런 자살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예측한 구조를 과감하게 비틀어버리기도 합니다.
평온한 시골마을에서 보여지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
영화는 줄곧 인서트 컷으로 평화로운 자연풍경을 보여주지만, 이 작은 도시는 온갖 배척과 차별, 권위주의에서 비롯된 폭력까지 포용 없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특히 밀드레드를 비롯한 주요인물들과 경찰 내부의 풍경은 그러한 차별과 배척을 함축 해 놓은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인 딕슨은 경찰이긴 하지만 시민을 지켜주기 보다는 공권력을 빌미로 차별과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입니다. 흑인차별 폭력사건으로 징계를 받기도 했고, 어머니와 나누던 대화 중 ‘남부도 이젠 예전 같지 않아요.’ ‘그러면 안돼.’ 라며 역시 미국사회에 팽배해 있는 인종차별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딕슨이 이렇게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인물로 보여지는 이면에는 동성애자라는 트라우마가 보여지기도 합니다. 이 또한 딕슨의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엿보이죠.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딕슨을 괴롭히는 건 오히려 백인들. 광고판을 세워 존경하는 서장을 괴롭히는 것도 백인 여자 밀드레드이고, 그 광고판을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내어준 것도 백인입니다. 결국 윌라비 서장의 자살로 분노를 참지 못한 딕슨은 같은 편이라 믿었던 백인, 광고주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퍼붙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존경하는 윌러비를 대신해 서장 자리에 부임 해 온 것도 딕슨을 해고하는 것도 바로 흑인이죠.
반면 밀드레드의 주변에 있는 것은 소수자들입니다. 그녀의 편이 되어주는 흑인 친구, 몰래 광고판 사용료를 주고 갔다는 맥시코 소년, 그리고 경찰서에 불을 지르는 순간을 목격하고서도 모른척 덮어주는 난쟁이 친구. 밀드레드와 딕슨을 중심으로 한 주변 인물의 배치역시 차별과 배척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있어 보입니다.

또 눈여겨 볼 점은, 해고 당하는 순간 경찰뱃지를 내놓으라는 신임 서장의 명령에 딕슨은 아무리 뒤져도 뱃지를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후반, 딕슨이 밀드레드의 딸을 강간 살해한 것으로 의심되는 남자의DNA를 확보하고 신임 서장에게 넘기는 장면(그것도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 까지)에서야 잃어버렸던 뱃지를 내밀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미 그는 경찰이 아니죠.
이는 경찰이기는 하나 시민 보호라는 경찰의 기본적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경찰에 대한 일종의 풍자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흑인 차별'이라는 말을 굳이'유색인종차별'이라는 단어로 고쳐 표현하려고 한다던가, 윌러비 서장이 여섯살 짜리 어린 딸들에게 낚시 게임을 가르치면서 이해할수도 없는 어려운 말로 룰을 설명하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경찰은 언어가 주는 권위만 내세울 뿐, 차별과 배척으로 표출되는 시민사회의 분노를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죠.
무엇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인물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져버리는 것은 캐릭터 그 자체에서도 보여집니다. 강간살인이라는 극악무도한 상황에서 딸 안젤라를 잃은 엄마 밀드레드. 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경찰서장. 관객은 어쩌면 가슴 절절한 어머니의 모습을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영화에서 밀드레드는 건초더미 같은 모습입니다. 메마른 눈동자,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오로지 범인을 찾아 나서라는 재촉과 강요, 집착, 어쩌면 억지. 안젤라의 방에서 회상한 마지막 순간까지도 서로에게 비난과 욕설을 퍼붙다 못해'길에서 강간당해 죽을꺼야!' '그래버려라!' 하는 독한 말들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안젤라는 그 말처럼 세상을 떠났죠.

반면에 경찰서에 있는 장면 외에는 항상 가족과 함께 등장하는 윌러비 서장은 항상 다정하고 인간미가 넘칩니다. 밀드레드를 말리려는 마을 사람들도 하나같이 좋은사람을 왜 괴롭히냐며 입을 모을 정도입니다. 거기다 췌장암 말기라는 가슴아픈 사연까지 더해져 관객들은 주인공인 밀드레드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보이는' 윌러비 서장에게 더 동정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윌러비가 밀드레드의 안타고니스트가 아님을 말합니다.오히려 죽기 전에 남긴 편지들을 통해, 인물들을 응원하거나 인도하는 초월적인 존재로 남겨집니다.

딕슨 역시 밀드레드의 적은 아닙니다. 오히려 윌러비 서장이 남긴 편지를 계기로 진정한 경찰로써의 모습으로 거듭나 보이기도 하고, 그 역시 나쁜짓을 짓고도 체포되지 않는 누군가를 향한 분노를 내뿜으며 밀드레드와 같은 여정을 걷기까지 합니다.
어찌보면 이 영화의 안타고니스트는 불분명한 누군가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밀드레드가 분노를 내뿜는 대상이 불특정한 것 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윌러비 서장이 남긴 편지처럼 분노가 분노를 유발할 뿐. 엄마와 딸 사이의 원망과 분노가 가슴에 비수를 내꽂았고, 범인을 잡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는 평화로운 소도시를 화염에 휩싸이게까지 합니다. 그러나 화염병을 던지기 전까지 밀드레드가 보여 준 망설임은 분노의 감정 아래 가려진 본연의 모습과 일말의 희망을 엿보이게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화의 마지막, 체포하지 못한 남자를 죽이러 아이다 호로 향하는 밀드레드와 딕슨의 대화는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그 남자를 죽일거야?
아직 모르겠어. 가면서 결정하자.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어보이는 이 영화의 각본엔 이 밖에도 무수히 많은 상징과 은유 또 반어법을 이용한 블랙코미디 적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좋은 영화일 수록 해석할 거리가 많다는 것이 바로 이 영화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시, 한번의 관람으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국내에 많은 영화가 소개되진 않았지만, 마틴 맥도나 감독은 언제나 영화적 구조에 충실한가 싶으면서도 예기치 못한 국면으로 장르를 비틀어버리며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제는 거장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감독의 기존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시네스쿨의 추천영화, <쓰리 빌보드> 였습니다.
본 포스팅은
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http://magazine2.movie.daum.net/movie/48609),
이데일리 문상훈의 시네마 크리티크(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8483), 씨네 21 이지현 평론가(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9694)
기사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