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뒷받침하고 있는 기술적 측면들이 괄목할 만 한 발전을 보여주면서,
이제 영화는 단순한 관람이 아닌 체험의 차원으로 넘어가고 있지요.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만의 새로운 세계들은 보는 즐거움을 더욱 높여줍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그런 영화적 트렌드와는 조금 거리가 멉니다.
1957년 개봉작인 이 영화는 그 어떤 시각적 요소도 배제된 채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서스펜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감독 시드니 루멧
출연 헨리폰다 외
• 1957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OCIC상(시드니 루멧)
• 1957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시드니 루멧)
• 1958년 영국아카데미영화제 외국 남우주연상(헨리 폰다)
• 1958년 미국작가조합상 각본상(레지널드 로즈)
• 1960년 블루리본상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시드니 루멧)
• 1960년 〈키네마준보〉 선정 최우수해외영화(시드니 루멧)
영화의 조건
앞서 이야기 했다시피, 그래픽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영화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세계까지 구축하며 인간의 상상력을 확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화려한 그래픽도 우리가 영화를 통해 보려고 하는 것은 '이야기' 입니다.
'한 남자가 아이를 구한다'는 아주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 일지라도 그 구하는 과정을 어떠한 드라마로 전개할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해 갈 것인가 하는 것이죠. 관객들은 관객들은 영화가 하고자하는 이야기와 그 안의 인물들이 어떻게 나아가고 있느냐를 바라보며 관람의 행위를 즐깁니다. 결국 이야기가 없이는 그 어떤 CG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입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그 이야기만으로 꽉 채운 영화입니다.
법정드라마이긴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흔한 사건의 재연도, 원고와 피고의 심문도 보여주질 않습니다. 그저 영화의 도입부에 사건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판사의 대사 몇줄이 있을 뿐이죠.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있는 빈민가의 유색인종 소년의 유무죄를 판단해야한다"는 것이 영화의 유일한 과제이자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야기를 해봅시다."
너무나도 명백해보이는 증거들을 인지한 12명의 배심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배심원실에 들어오며 영화는 본격젹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니, 정확히는 이야기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며 그저 사건을 빨리 해치우고 찜통더위 같은 배심원실을 나가고 싶어하죠. 그래서 이 명확해보이는 사건에 반문을 재기할 사람이 있을리 없으니 단판에 유무죄를 가리는 투표를 진행하도록 합니다.
모두가 소년의 유죄를 확신하며 유죄 의견에 손을 드는데, 유일한 한사람 8번 배심원만이 손을 들지 않습니다. 소년이 무죄(innocence)라서가 아닙니다. '유죄가 아닌 것 같아서(not guilty)' 입니다. 자신마저 손을 들게되면 한 소년이 너무 쉽게 사형의 형벌을 받게되니 유죄가 아닐지도 모르는 일말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나 나눠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 8번 배심원의 요지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확신할수는 없지만 유죄가 아닐수도 있다'는 8번 배심원을 설득하려 이야기를 시작한 나머지 11명의 배심원이 그제서야 진지하게 사건을 들여다보고, 증거와 증언들을 하나씩 되짚어가며 '유죄가 아닐수도 있다'에 동의하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배심원실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순수하게 대사만으로, 연극과 같이 만들어진 이 영화는 (회상이나 재연, 상상과 같은 불필요한 장치도 없이) 12명의 인물이 모두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물의 경중을 분배합니다. 극우 매카시즘 옹호자부터 빈민촌 출신의 유대인, 아무 생각없는 야구광과 세일즈맨, 노인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인물들은 당시 미국사회를 압축시켜놓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영화의 첫 장면을 돌이켜보면 법원 외벽에는 이러한 문구가 써 있습니다.
'진실한 법 집행이 좋은 정부의 대들보다.'

배심원실이라는 밀폐된 공간, 사건에 대해 나열된 진실들을 종합해 대표로 의견을 종합한다는 배심원의 성격은 민주주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안에 대해 가볍게 여기며 토론을 무시하고, 다수의 힘으로 한명의 반대자를 깔아뭉개는 듯한 배심원들의 태도는 당시 미국사회에 팽배해 있던 매카시즘(*1950년대 미국의 반공주의)이 얼마나 민주주의를 황폐하게 만들었는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사람들을 질리게 만드는 무더위는 그러한 사회 시스템 안에서 무기력해진 개개인을 만들어주는 또다른 상징적 장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전등스위치와 연결되어있어 내내 작동하지 않았던 선풍기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는 사회시스템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말하기의 힘
앞서 이야기했듯 이 영화는 순수하게 대사만으로 드라마를 촘촘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증언과 증거들을 되짚어가며 서로의 '말'들을 점검하고 의심하고, 논박하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유죄가 아닐수도 있으니까요' 하고 소심하게 의견을 펼쳤던 8번 배심원의 한두마디가, 나중에는 이성과 합리에 의한 문장으로 모두를 설득해가는 것이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민주주의 위기를 맞은 불관용의 사회에서 '말하기의 매력과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고전이 된 것이죠.
감독인 시드니 루멧이 여러 영화에 걸쳐 조금 도덕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고, 당시 영화가 미국의 부르주아 사회를 가르치려 든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잘 만든 법정드라마의 표본이 된것임에는 분명합니다.
점점 볼거리는 많아지고, 영화가 보여줘야할 영역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오늘 소개한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영화가 지닌 이야기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지금까지 시네스쿨 추천영화 12번째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참고 문헌
씨네21 [걸작 오디세이] 위기맞은 민주주의와 말하기의 힘 - 한창호 영화평론가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5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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