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 액션영화는 오락영화의 정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오늘은 2000년 개봉 이래 큰 사랑을 받아온 엑스맨 시리즈, 그 중에서도 엑스맨의 대표적인 캐릭터 울버린과의 작별을 고한 영화 <로건>을 소개합니다.

엑스맨, 소수자들의 이야기
최근 사랑을 받고있는 마블 세계관에 있어 어벤져스와는 조금 다른 무리들이 있습니다.
바로 엑스맨.
똑같이 특별한 능력을 갖고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능력을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모습은 조금 다릅니다.
어벤져스가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고 과시하며 인류를 위해 희생하는 동안
엑스맨은 자신들의 능력을 마치 장애처럼 받아들이고, 보통의 인류와 어떻게하면 공존할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논쟁하는 무리입니다.
이 들은 초능력을 갖고 있는 진화된 인간, 특권층이 아니라 보통사람이라면 갖고있지 않은 '저주받은' 능력들로 자신의 자아에 대해 고통스런 질문을 안고 사는 인물들이죠.
그 중에서도 울버린은 시도 때도 없이 주먹에서 무기가 튀어나오는, 안그래도 받아들이기 힘든 능력에 의도치않은 실험으로 인해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는 철골을 강제로 주입당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양심의 가책따위는 찾아볼 수는 없는 살상 무기로 만들겠다는 스트라이커의 야심으로 기억마저 잃어버린 그야말로 비극적 인물입니다.

엑스맨의 울버린과 로건 사이
엑스맨이 개봉한 이래, 엄밀히 따지자면 영화에 표현되기 이전, 그가 초능력을 받아들인 이래
그는 줄곧 실험체인 '웨폰X' , 또는 '울버린'이라는 초능력자로써의 이름으로 살아왔습니다.
때문에 지금까지 시리즈들에서 그려진 그의 모습 역시 아무리 얻어터지고 피부가 찢겨도 금방 재생되는 자신의 피부처럼 고뇌는 있으되 영원할 것만 같은 금강불괴의 모습이었죠.
하지만 <로건>에서의 모습은 조금 다릅니다.
리무진 기사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하는 우리의 울버린은
그나마 돈벌이가 되어주는 리무진을 빼앗으려는 동네 양아치로부터 신나게 얻어터지기도 하고 시도때도 없이 날카롭게 뻗어나와 적을 위협하던 그의 강철 손톱마저 그의 주먹을 피로 물들이며 삐끄덕거립니다.

전체 엑스맨시리즈의 시간을 생각했을 때 100여년을 살아온 그이지만
이렇게 비루한 인생을 보여준 적은 처음입니다.
실제로 영화는 더이상 돌연변이가 태어나지 않는 시대에 그들은 퇴물급 돌연변이입니다.
세계 정세를 뒤흔들만큼 위협적인 뇌를 지녔던 찰스 자비에는 역설적이게도 치매의 노인이 되어 가장 위험한 두뇌가 되었고, 최강의 무쇠 아다만티움과 자가치유능력까지 지녔던 울버린은 초능력자로써의 그 이름을 숨긴 채 술과 담배로 자신을 괴롭히는 중금속 중독 증세를 견뎌내며
원래 자신의 이름(정확히는 아버지의 이름)인 '로건'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냉혹한 현실 속에 죽어가는 히어로를 위하여
그간의 엑스맨 시리즈를 빗대어 생각해 보면, <로건>은 청소년 관람불가의 등급이 당연할 정도로 유난히 잔인합니다.
영화의 색감도 전체적으로 채도가 낮은 듯한 느낌으로 배경 역시 찰스 자비에가 묻히는 호수가나 마지막 전투가 있는 숲을 제외하곤 거의 황무지에 가까운 풍경들이죠.

이는 인물들이 처한 비루한 현실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렇게 냉혹한 현실 속에서, 초능력자이자 돌연변이 울버린은 잊혀지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죠.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다른 엑스맨들의 마지막은 희미합니다.
영화 속 세상 사람들은 더이상 돌연변이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만 '그렇구나'하고 인지할 뿐
그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같습니다.
영화는 울버린 마저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듯이, 이미 죽어있던 그의 이름 울버린을 어느 이름없는 무덤가에서 끄집어 올립니다.
울버린의 장렬한 서부극식 장례
메마르고 황폐한 배경. 비루에 찬 인물의 모습. 끊임없이 던져지는 '죽음'의 코드들.
<로건>은 수정주의 웨스턴과 같은 흐름을 보입니다.
서부에 대한 비판이나 해체를 넘어, 서부시대의 영웅들을 잘 마무리해주는 '장례 절차'로써의 태도를 따르고 있는 것이죠. 존 웨인의 장례식을 위한 여정을 극의 구 영화 속에 직접 보여지기도 하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2000년 처음 등장한 이래 큰 사랑을 받아온 신화적 인물로써의 울버린이나 그로 대표되는 시리즈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는 무덤과 장례식을 완성하며 쓸쓸히 소멸하며 사라지는 것을 '애도'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영화들에서 울버린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뇌를 놓지 않았듯,
로건은 마치 자신의 묘비명을 어떻게 적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늘 자신 때문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다치고 죽게 만들어야하는 외로운 이 인물은
죽음 앞에서 또다시 자신과 똑같은 존재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죠.

특히 로라는 찰스의 말처럼, 소싯적 울버린과 똑같습니다.
원치않게 강해진 자신의 신체에 괴로워하고 그를 이용하려는 악의 무리로부터 도망치려 애쓰고 있습니다.
반면에, X-24는 똑같이 로건의 유전자에서 비롯되어 심지어 외모도 똑같은 그야말로 분신같은 존재이지만 완벽히 악의 무리의 뜻대로 움직이는 무기입니다.
로라가 남들이 자신을 헤치려하는 악몽에 시달리는 동안, 자신이 남들을 헤치게 되는 꿈에 시달리는 로건의 악몽이 실현된 모습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리겠다 간직해왔던 아다만티움 총알은 로라의 손에 의해 X-24의 머리를 관통하며 그 악몽도 끝이 나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로건은 그저 인간으로써 아버지의 면모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로건의 작은 장례식으로 영화의 여정이 끝나고, 길을 떠나는 로라가 로라의 무덤에 꽂힌 십자글 뽑아 X자로 만들면서 비로서 그의 죽음은 인간 로건의 장례와 엑스맨 울버린의 장례로 마무리되며 완성되고 있습니다

2000년에 첫 등장을 했으니, 약 17년을 함께 해 온 캐릭터입니다.
학생의 신분으로 울버린을 처음 만난 관객들은
엑스맨 시리즈와 <로건>이 판타지 히어로에서 노쇠한 인간이 되었듯
세상에 대한 판타지가 깨지고 냉혹한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척박한 사회생활을 이겨내고 있는 성인이 되어있습니다.
어쩌면 <로건>은 그 비루한 현실을 인정하고, 자기 안에 남은 동화적 상상력과 판타지와 안녕을 고하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히어로 영화의 의미있는 변주와 시리즈물의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종결을 보여준 영화 <로건>이었습니다.
*본 리뷰는
씨네21 - [안시환의 영화비평] 수정주의 웨스턴과 <로건>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6715
유튜버 '거의없다'의 [영화 걸작선] 외전 - 로건
https://www.youtube.com/watch?v=nrxlkTy4ZrE&t=871s
을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